2001년 여름. 고1의 여름방학에 군자역 환승도중 나는 갑자기 토끼를 샀다.
뜬금없이 동물을 데려오는 일이 어릴때 부터 자주 있었는데 늘 그 뒷감당은 엄마의 몫이었고, 그래서 초딩때 이후로 잠잠하다가 난데없이 딸이 토끼를 데려왔을때 엄마는 미쳤냐고 한마디 하셨다.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은데도 기세만큼은 호랑이 같아서 건강하게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토끼.
너무 어려서 분유를 사다가 주사기로 먹이면서 기른 아이가 13년을 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사이에 우리 가족은 세 번을 이사하고, 월드컵이 세 번, 대통령은 김대중에서 박근혜로 바뀌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지금 직장에 다니고, 곧 독립할 지도 모른다.
그 긴 세월동안 이 토끼는 집안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가족에게 웃음도 주고 짜증도 주고 위안도 줬다.
그리고 이 아이는 2014년 8월 12일에 떠났다. 마지막 4개월은 누워서만 생활해야했다. 이미 병원에서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지 오래였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한참전부터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닥치니까 너무나 그립고, 미안하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슬프다. 요 몇일 감정기복이 심해서 좀 힘들다. 덕질이고 일이고 뭐고 집중도 안됨.
그냥 이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를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특별했던 토끼. 우리 가족. 내 동생.
더이상 낡은 육체에 갇혀서 괴로워 말고 평안하길..
지롱아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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