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임산부들이 그렇겠지만 막달이 되면 제발 그냥 빨리 나와라+출산일에 대한 공포가 섞여서 매우 초조해진다.
임신 초기는 입덧과 온갖 변화들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중기는 꽤 여유롭고 행복했던거 같은데
막달은 이제 끝이 보이는데 거기에 고통이 있다니까 무서운게 사실이다.
사람마다 경험도 다 다르니까 언제 아기가 나올지, 어떻게 나올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미리 알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걸 걱정할 수는 없으니 그냥 우리 부부는 아기의 건강만 걱정하기로 했다.
- 19년 4월 10일 점심 양수 터짐.
그 날도 혼자 점심 사먹으러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양수가 툭 하면서 줄줄 흘러나와서 바로 인식할 수 있었음.
양수가 터지면 너무 미세하게 흘러서 모르는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겪어보니 이건 생리보다 심했다. 물이 정말 움직일때마다 주루루루룩 흘러서 처음엔 팬티라이너를 붙이고 병원가려다가 오버나이트로 바꿔야했다. 회사에 있던 남편에게 연락하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이동. 바로 입원수속을 밟았다.
나는 집에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내가 출산하러 가면 출산+조리원+친정에서 한달 지낼 계획이라서 이 아이들과 한 달 반은 떨어져 지낼거라 출산하러 갈때 당황하거나 초조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느라 약간 고생했다. 실제로는 양수가 걸을때마다 다리를 타고 주르르륵 흘러서 드디어 애가 나오나 싶어 심장이 쿵쾅댔는데도 애들 쓰다듬으면서 아빠 말 잘 듣고 있으라고 말하는게 꽤 힘들더라.
양수가 터지면 감염위험과 산소부족 문제가 있기 때문에 터졌을때 씻지말고(감염위험) 바로 병원에 가서 24시간 이내에 분만을 해야한다. 따라서 보통 촉진제를 놓는데... 저녁까지도 촉진제 맞은 내 자궁경부는 별로 열리질 않더이다.. 진통도 아주 미세하게 오는 수준이라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그날은 저녁으로 죽을 먹고 대기실에서 잠. 입원실이 다 차서 대기실을 줬는데 보호자는 누울곳도 없어서 남편은 주차장 가서 차에서 잤다ㅠ 집에 가서 애들 밥도 주고 오고. 나 출산하러 갔을때 남편이 고생 정말 많이 함.
그리고 정말 느꼈는데, 출산 병원은 집이랑 가까운게 좋은거 같다. 나는 임신 정기검진을 편하게 받으려고 회사랑 가까운곳을 다녔는데 정작 출산때는 집에서 거리가 있다보니 남편이 나도 돌보고 동물들도 돌보고 중간에 껴서 너무 힘들어했다.
- 19년 4월 11일
새벽 5시 반부터 다시 촉진제를 맞고 시작. 배에 태동과 심장박동을 감지하는 센서같은걸 붙이는데 간호사가 중간중간 와서 확인하고 진통 간격을 보고 가족분만실로 이동시켰다. 전날보단 확실히 촉진제가 잘 먹히는지 점점 진통이 오는데 으어... 진짜.... 온 내장기관을 다 쥐어짜는 고통인데 너무너무 신기한게, 진통 구간이 끝나면 하나도 안 아프다... 와...
그리고 그게 점점 짧게 더 강하게 오니까 빈속에 씻지도 못하고 점점 지쳐서 견딜 체력이 바닥나더라. 막판에는 힘들어서 진통오면 남편 붙잡고 발버둥치다가 정신이 들고 보면 진통 끝났고 잠들어있음... 안 아프니까 기절한건지 기력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신이 없었다.
점심 정도가 되었을때 이미 무통도 효과가 떨어질 때였고 자궁이 아직도 5cm정도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내진 결과를 들음..ㅠㅠㅠ 10cm이상은 열려야 분만에 들어갈텐데... 그리고 문제가 뭐냐면, 아기가 내려오긴 하는데 아기가 회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태아가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회전을 해야 수월하게 분만이 진행되는데 지금 아기가 똑바로 누운채 회전없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분만이 오래걸리고 잘못하면 아기가 끼어서 시간이 지체되면 호흡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난산이 예상된다고 했다.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골반이 작은 것도 아니고 모든 조건이 좋았는데... 출산 당일에 이런 일이 생길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한시간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가 그런식으로 2시간을 더 버텼는데 7cm열리고 아기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지, 회전할 기미가 없다. 체력은 다 떨어졌고 두번째 무통은 효과도 없고... 나는 결국 제왕을 해달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데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내가 포기하는거 같아서.
수술이 결정되고 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오후 4시 18분에 아기를 낳았다. 난 주사를 무서워해서 피뽑을때도 주사를 못보는데 수술실에 가니까 너무 떨려와서 척추에 마취할때 간호사 선생님을 꽉 잡고 덜덜 떨었다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기 얼굴을 보여주시길래 '아기야 안녕' 하고 손을 내밀었더니 내 왼쪽 검지손가락을 꽉 잡아줬다ㅠ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드디어 널 만났다.
그리고 마취로 기절ㅋㅋㅋ
눈뜨니까 회복실이었고 곧 입원실로 옮겨짐. 척추마취라서 어느정도 시간이 될때까진(거의 5~6시간?) 목도 가누지말고 그대로 누워있으래서.. 누워서 할일도 없고, 그냥 바로 폰잡고 여기저기 소식을 알렸다.
양수 터지기 하루 전에 뭔가 마지막이란 느낌이 들어서 남편한테 편지를 썼었는데 그것도 그때 줬다. 드러누워서 할일 없어서 편지 전송.. 21세기니까 편지도 전자메일을 쓴다..
막 입원실 와서 누워있을때는 하반신, 특히 배쪽이 불타는것처럼 아팠고 몸에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아이스팩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이불도 무릎까지 내려뒀다. 열 내리느라 몇 일 두고 본듯.
내 출산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결국 진통 할대로 다 하고 수술까지 했으니 진통 시간은 대충 9시간 정도인가..를 보낸듯. 하도 정신 없어서 그때는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체력 다 떨어져서 제왕하고 회복실에서 2시간 지나서 입원실 들어갔으니
새벽 5시 반부터 시작한게 다 끝난건 오후 6시 이후였던거 같음.
자연분만은 보통 입원을 2박3일 정도 하지만 제왕은 3박4일을 한다.
입원부터 조리원 생활까지는 다음 포스팅으로..
나는 대기실에서 1박한걸 포함하면 병원에서 4박5일 있던 셈이지만..ㅠ
지금 생각하니까 병원에 진짜 오래 있었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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